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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 웨스트라이프야.’ 솔직한 심정이었다. 웨스트라이프 노래라고는 ‘My Love’밖에 몰랐다. 심지어 열네 살 때 들은 게 전부다. 그것도 좋아하는 가수가 팬미팅에서 불러서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웨스트라이프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게는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노래의 원곡 가수일 뿐이었다.
웨스트라이프가 한국에 온다고 했다. 정확히는 웨스트라이프였던 셰인 필란이다. 웨스트라이프는 7년 전 해체했다. 14년 동안 보이 팝 밴드를 대표했던 그들이다. 해체 전 마지막 월드 투어차 서울에 왔던 셰인 필란은 그 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7년 만에 다시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엔 혼자였다.
그와 짧은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셰인 필란을 검색해 그의 솔로 앨범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노래가 흘렀다. 갑자기 숨이 덜컥했다. 창피하지만, 정말 그랬다. 나의 열네 살 시절이 난데없이 튀어 올라서.
열네 살의 나는 누군가의 팬이었다. 엄마아빠를 졸라, 새벽 5시에 일어나, 팬클럽에서 빌린 관광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서울 잠실운동장에 도착해, 몇 시간을 기다려, 좋아하는 가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정작 가수는 성냥개비처럼 보였지만 누군가를 향해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고 즐거웠다. 그곳에서 나는 ‘My Love’를 알게 됐다.
심드렁하게 찾아 들은 셰인 필란의 노래에 그 시간이 담겨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주야장천 듣던 ‘My Love’ 속 목소리와 놀랄 만큼 똑같았다. 멜로디에 얹힌 그의 목소리에 그날이, 천진하고 난만했던 나의 그때가 선명해졌다.
“7월 내한 공연 때는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어요.” 일정에서 잠시 짬을 내 만난 셰인 필란은 두 아들 이야기를 했다. 9살, 11살 난 아들들이 요즘 아빠가 어디 가는지 제일 궁금해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웨스트라이프를 모른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만드는 지금도 변함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미드 <프렌즈> 알죠? 웨스트라이프 때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자면 <프렌즈> 같아요. 그렇게 큰 성공을 하고 나서 다음에 같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죠.”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엄청난 성공작이 아니라 평범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이 공감하고 아껴주는 노래요.”
셰인 필란은 <불후의 명곡> 녹화를 위해 금세 떠났다. <불후의 명곡>의 부제는 ‘전설을 노래하다’이다. 셰인 필란은 이미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지나간 전성기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언제적’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헤어지며 인사했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그와 그 덕분에 만난 나의 한 시대에게.
출처 {에디터 : 김은희, 사진 : 김상곤, "소년 시대", <에스콰이어 - TASTE>, 2018년 6월호}'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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