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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에나 어울릴 법한 한식 재료를 빵빵하게 넣은 빵들이 지금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있다.
최근 20대들이 기꺼이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나르는 빵들은 어딘가 생소하다. 하나같이 빵을 자른 단면을 찍은 사진인데, 가만히 보면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부재료가 대부분의 부피를 차지한다. 여기서 부재료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유제품, 초콜릿, 견과, 건과 등이 아닌 단호박, 고구마, 밤, 팥, 콩, 흑임자 등이다. 초록색을 띠는 재료는 당연히 말차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쑥이다. 떡에 들어가야 할 부재료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 빵에 들어갔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빵을 개발하는지는 자유인 만큼 그러려니 넘기려는데, 인스타그램이 이러한 빵으로 도배된다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팥이야 고전적인 빵의 부재료이며, 고구마밤 등은 익숙한 간식이라 하더라도 쑥콩단호박깨 등은 젊은 사람들이 그리 환영할 만한 식재료가 아니지 않은가. 이쯤 되니 떡에 더 어울릴 법한 한식 재료가 부재료로 빵빵하게 든 빵이 유행하는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사실 이런 빵을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괴식에 가깝다고 여겼다. 맛을 추구한다기보다 시선을 끌기 위한 것 같았다. 빵의 단면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들도 비슷한 의도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빵을 취재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런 보여주기식 소비와 판매를 비틀고 싶은 마음도 다소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취재하느라 빵을 시식하고,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제빵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제빵사들은 요리사와 같은 존재다. 서양식을 배우고 이를 선보이던 셰프들 중 한식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많듯, 제빵사들도 서양의 식문화인 제과제빵을 배웠으나 자신들이 매 순간 마주하는 한식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주로 한식을 먹고 살잖아요. 외국에서 들어온 식문화인 빵에 한식으로 익숙한 식재료를 접목하면 오히려 특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식 재료를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알토브레드 유철종 대표의 말이다.
장티크 김장환 대표도 유 대표의 말에 동의한다. “일본에서 빵을 배우며 가장 부러웠던 것이 서양 빵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었어요. 명란 바게트 같은 걸 만드는 게 몹시 놀라웠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러 가지 한식 재료를 보러 다녔어요. 결국 저를 포함하여 제 빵을 먹는 사람들 모두 한국 사람이니 굳이 정통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베이스는 정통을 고수하되 한식 재료를 접목하기로 했죠.” 실제로 김 대표는 국내에서 빵보다 한식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고 연구하며 빵에 어울릴 만한 조합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본이 서양의 제빵을 자기식으로 개발해 만든 빵의 원조는 어쩌면 단팥빵이다. 단팥빵은 부재료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탓에 별 감흥 없이 받아들인 반면, 앙버터는 다시 한번 동서양의 조합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을 터. 젊은 제빵사들이 자신이 무엇보다 잘 아는 한식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빌려와 자신만의 빵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편 주객이 전도될 만큼 부재료를 많이 넣는 이유는 가성비와 인스타그램의 영향이라고 추측된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는 원래 테크 분야에서 주로 쓰던 용어로 식문화에 대입된 건 2011년경의 일이다.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고객을 유치하는 수단으로 PB 상품을 개발하면서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푸짐한 구성을 강조하며 가성비가 화두가 된 것. ‘@_yuna,lee’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하루 1회 이상 빵 사진을 게재하는 이유나 씨는 부재료를 감싼 빵 부분을 ‘피’라고 부른다. 이는 빵이 만두처럼 부재료를 감싸는 역할을 하는 쪽으로 변하는 경향을 시사한다. 물론 모든 빵이 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자신과 같이 한식 재료가 푸짐하게 든 빵을 좋아하는 이들을 ‘할매 입맛’이라 규정하고, 이러한 변화를 누구보다 반긴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고구마나 단호박을 먹으라고 해요. 그런 걸 빵 피와 함께 먹을 때 구수함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그녀 같은 할매 입맛을 가진 젊은 인스타그래머들이 열광하는 빵집을 소개하니, 이러한 흐름이 납득이 가는지 한번 먹어보고 판단하기를.
출처 {에디터 : 민용준, 글 : 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사진 : 신규철, "빵빵한 빵", <에스콰이어 - TASTE>, 2018년 5월호}'Fo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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