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버리는 부위를 요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상의 요리 기술이란 것이 대부분 공개된 세상이다. 덕분에 왕육성 셰프나 이연복 셰프 같은 옛날 형들 이야기는 거의 전설이 됐다. “선배들이 요리법을 안 가르쳐준다고, 절대. 자기 밥벌이 수단이라는 거지. 게다가 그들도 가르쳐서 배운 게 아니었거든. 훔치거나 연구해서 알아내는 식이었지. 몰래 어깨 너머로 보고 있으면 국자가 날아왔다고.” 요즘은 다르다. 만약 ‘모로코풍의 허브를 이용해 48시간 동안 익힌 양어깨갈빗살 요리와 바삭한 감자튀김 곁들임, 마데이라 와인 소스’를 배우고 싶다고 치자. 구글과 유튜브에서 정확히 3분만 손가락을 움직이면 조리법을 얻어낼 수 있다.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나중 문제이다.
사실 프랑스의 거장 셰프 알랭 뒤카스뿐 아니라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얻어낸 요리사들은 요리책을 쓰면서 조리법을 공개한다. 알랭 뒤카스가 가슴살의 껍질을 바삭하게 익히기 위한 기름 제거법을 알려주는 반면, 스페인의 세계적인 셰프 호안 로카는 한천과 잔탄검, 알긴산을 이용한 공처럼 만든 트러플 오일 토핑 만드는 법을 책에 자세하게 소개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베껴라. 그동안 나는 다른 요리를 준비하마.’ 이런 태도랄까. 그래서 고작 내가 고안해낸 건 별난 조리법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못 낼 수가 없다) 비장의 꼼수도 아니다. 그저 ‘남들이 안 쓰는’ 요리 재료를 찾고 있을 뿐이다. 오리 한 마리를 잡아서 가슴살 두 개를 팔고 나면 남는 다리 두 개를 리예트도, 콩피도 아니고 폼 나게 구워서 팔아 치우는 걸 시작한 게 나였다. 그것도 가슴살보다 더 비싸게. 미역이나 김 가루, 심지어 노량진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대구알로 애피타이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발이 네 개 달린 건 역시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고, 덕분에 요리사들은 이를 메인 요리라는 이름으로 판다. 그것이 삼겹살이라고 해도. 사실 소는 등심과 안심을 빼고 나면 양식에서 다룰 부위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머리를 조금 굴리면 얼마든지 팔 거리가 생긴다. 마장동 골목을 걸을 때 나는 미친놈처럼 혼자 웃었는데, 보이는 것마다 다 팔아먹을 수 있는 재료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소 불알 두 쪽과 그것에 수반하는 기다란 작대기 같은 걸 사 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 수셰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온으로 삶아서 먹을 수 있는 타이밍까지 시간을 체크해봐.” 그 친구에게는 지금도 미안하다. 그래도 그는 내 덕에 불알은 10분만 삶으면 먹을 만하게 부드러워지며, ‘작대기’는 꽤 오래 삶아서 연골처럼 익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것을 메뉴로 올리지는 않았다. 당시 내가 일하는 식당은 소개팅의 명소였거든.
대신 내장과 부산물은 내 차지였다. 머리는 푹 삶으면 아주 특징적인 세 부위를 얻을 수 있다. 머리의 앞면은 오래 삶으면 아주 쫄깃한 식감으로 변하며, 그 아래 붉은 살코기는 볼살이라는 이름으로 저온 조리하거나 삶아서 팔 수 있는 재료가 됐다. 최고는 혀다. 앞쪽은 오래 삶고, 안쪽은 가볍게 구워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물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앙치질을 안 하는 소의 침 냄새가 지독하다는 건 요리사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재료비가 40%가 넘는 안심 스테이크가 아니라, 고작 5%나 10%의 재료비로 꽤 근사한 가격대의 요리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당신 혼자 독점할 수 있는 요리라면 도전해볼 만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가 참말로 고마운 건 위가 네 개라는 점이다. 각기 다른 성격의 조직감을 요리사에게 선사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대신 밀가루로 빨고 손질하고 끓는 물에 튀기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하면 어느 고기 못지않게 맛있고 남들이 팔지 않아 홀로 독점한 테이블을 펼칠 수 있는 재료를 마다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다. 닭은 또 어떤가. 공장에서 부분육을 만들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닭 껍질은 사료로 내다버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를 튀기면 근사한 안주가 된다. 역시 사료가 되는 간과 콩팥은 술꾼 정도의 비위를 가진 이가 한번 먹어보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닭발로는 편육을 만들고, 연골을 모아서 튀겨보라. 술꾼들이 마구 술병을 비틀 것이다. 허파며 심장 같은 재료는 이제 한식집에서도 쓰지 않는 부위지만 한때 우리 아버지들은 이런 걸 안주 삼아 막소주를 마셨다. 다시 말하면 요리하기에 따라 꽤 먹을 만한 부위가 된다는 뜻이다. 확실히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닭 내장으로 소시지를 만들고, 돼지머리를 훈제해 열 가지 부위로 나눠 파는 술집을 열 수도 있겠다. 참고로 닭 내장과 돼지 꼬리와 소 염통을 거의 공짜로 얻은 시점에 확인한 한우 안심과 등심의 최상등급품 도매가는 kg당 7만원대였다. 나 같으면 소 안심 대신 닭내장탕을 끓이고, 소 염통을 삶아 막숯불에 훈제한 뒤 술안주로 팔겠다.
출처 {에디터 : 민용준, 글 : 박찬일(로칸다 몽로 셰프), "먹어도 괜찮아", <에스콰이어 - TASTE>, 201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