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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일상Movie/Review 2018. 9. 12. 01:20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능으로 만든 영화 '더 테이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자리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관객이 없는 수많은 영화로 둘러싸인 상영관일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하루>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 <더 테이블>은 어쩌면 그런 세상에 대한 예민한 관심과 기민한 시선을 지닌 어느 특별한 관객이 수집한 영화들일지도 모르겠다.
<더 테이블>은 정확히 각기 다른 네 쌍의 커플이 하나의 테이블에 앉았다 일어나는 사이에 나눈, 네 가지 대화를 나열한 작품이다. 각자의 입으로 발음하는 말에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의 안타까움과, 무심코 뱉어버린 진심의 민망함과, 다가가고 싶은 진심의 경로를 찾지 못한 조급함과, 상대의 진의를 알 수 없어 느껴지는 불안함과, 낯선 이에게 전하게 되는 뜻밖의 마음 씀씀이와, 더 이상 마음을 나눌 수 없음을 직감하는 단호함과, 그럼에도 한 발자국 다가서고 싶은 미련 같은 것들이 부유한다. 입과 입 사이에서 돌고 도는 말과 말 사이에서 환기되는 기억들. 그리고 기억과 기억 사이에 쌓인 장벽을 확인하고, 오해를 확인하고, 관계를 확인하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완전히 헤어진다.
이 영화의 흥미는 어떠한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관객을 상상하게 만들고, 저마다의 일상을 더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이들이 달라지면 언어도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지고, 각자 머문 시간의 차이처럼 화면의 공기도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여느 카페의 풍경 속에 문득 귀를 기울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건 이 영화가 구사하는 소소한 마법일 것이다.
정유미와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그리고 김혜옥까지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는 출연하는 모든 배우를 위해 마련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지극히 사소한 모두의 대화에는 내밀한 사연이 담겨 있고, 그들 모두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인력이 발휘된다.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재능은 소소해서 더욱 진귀한 것이기도 하다. 흡입력 있는 대사와 리드미컬하게 편집된 컷의 리듬감,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다양한 앵글을 포착하며 탁월한 면과 섬세한 결을 만들어내는 촬영술. <더 테이블>은 어쩌면 정작 우리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일상성이라는 영화가 담백하고 영롱하게 사소한 아름다움을 담아낼 줄 아는 재능을 만나 빚어진 보기 드문 소품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영화가 끝나면 러닝타임이 70분 남짓이라는 사실에 되레 놀라게 된다. 짧지만 꽉 찬, 적절한 느낌. 8월 24일 개봉.
출처 {에디터 : 민용준, "영화로운 일상", <에스콰이어 - TASTE>, 2018년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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